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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난아카데미 작성일16-02-12 16:27 조회1,570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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​​내가 농업으로 돈 벌이를 시작한지 벌써 35년을 넘었다.

 

어릴적 토끼로 시작해 고 2때 영농후계자 자금을 받아 흑염소를 길렀고,
군에서도 농업을 보직 받아 분재와 난을 길렀다.

제대 후 차린 난원에서 시작한 난 농사가 벌써 26년이 되었다.
길기도 하였지만 잠시같기도 하다.

내가 우리나라 토종 신토불이 난인 한국산춘란에 발을들여 오늘까지
27년의 시간동안 늘 고민해 왔던 것이 1조에 달하는 선물용 동양란 시장을 어떻게 하면 국산화 시키느냐 이었다.

애국 애족이 뭐 별거더냐 각자의 직업에서 외화 유출을 줄이는것도 애국이 아니더냐
 
 

선물용 동양란 시장에 국산율은 0.0001%에도 못 미친다.
난을 평생 연구한 한 사람의 농학도로써 실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. 

더하여 우리나라는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난을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자
난을 일반 꽃이나 식물보다 신성시 하는 민족이다.

 학위연구를 한 하남성의 동백현 난학회 왕선룡 님의 말을 인용하면
하남성의 동백현은 40만 인구 중 4만명 이 중국란에 참여 한다고 한다.
특히 자기 지역에서 나는 난을 취미나 주.부업으로 한다고 또렸이 말했다. 

내가 연구소(영농조합법인 내 이대바난연구소)를 차린 대구
의 수성구는 인구가 46만 인데 한국산춘란으로 취미나 주.부업으로 선택한 사람이
고작 200명 전 후쯤 밖에 되지 않는다.

이런 이유와 오랜 나의 꿈인 저변확대를 모두모아 더욱 더
 "한국춘란 대중화" 를 이루려는 대의를 가슴속에  품게되었다.

이대발박사 하면 떠오르는게 나 도 모르게 "한국춘란 대중화 운동가" 가 되어버렸다.
조국을 위해서 선택한 일 인 만큼 자랑스러울것도 나쁠것도 없다.
 
 

나는 그간 한국산 춘란 대중화를 위해 운동하려고 스펙도 쌓고 이름도 내고 방송도 많이 나갔다.
이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송과 언론에서 난 하면 "대한민국 난 명장 이대발 박사"가 되어버렸다.

근 간에 들어서 강남구청에서 한국춘란 강의를 하게 되었다.
대중화를 위해서 제안서를 제출해 선택을 받아 매 회 36시간 한국춘란을 강의하게 되었다.
제목하여 "꿈을 심는 아파트 한국춘란 귀농" 이다.

반응이 참 좋다.
오늘 올린 사진에 보면 70대의 어른들이 20%나 달 한다.
사진의 서수남 수강생은 유명인 인데도 사뭇 진지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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